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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5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거울

거울 자기, 1970년대 — 무한한 거울과 멈춰 선 자기

하인츠 코헛은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비춰짐'에서 찾았다. 아이는 자기를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눈빛 속에서 처음으로 자기 가치를 확인한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돌아오는 반짝이는 시선, "잘했구나" 하고 비추어 주는 얼굴 — 그 반사가 흩어져 있던 자기를 하나로 묶어 준다. 코헛은 이렇게 비추어 주는 상대를 자기의 일부처럼 쓰는 관계라고 보았다.

그런데 코헛의 통찰에서 정작 중요한 대목은 그다음이다. 비춰짐만으로는 자기가 자라지 못한다. 견딜 만한 작은 실망이 함께 있어야 한다. 어미가 늘 완벽하게 맞춰 주지는 못하고, 때로 늦고, 때로 어긋날 때, 아이는 그 작은 빈틈을 견디며 비추어 주던 기능을 조금씩 자기 안으로 들여온다. 바깥의 거울이 하던 일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다. 코헛은 이 견딜 만한 어긋남을 '최적의 좌절'이라 불렀다. 자기를 세우는 것은 완벽한 비춰짐이 아니라, 비춰짐과 그 적당한 실패의 반복이었다.

화면 속의 응답은 마찰 없는 거울에 가깝다. 무엇을 비추어도 호의적으로 돌아오고, 좀처럼 어긋나지 않으며, 늦는 법도 없다. 자기 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순간에 그것은 거의 즉시, 거의 언제나 반짝이는 시선을 돌려준다. 그 반사가 주는 안도는 진짜다.

다만 거기에는 최적의 좌절이 빠져 있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거울 앞에서는, 바깥의 기능을 안으로 들여올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 늘 비추어 주는 표면이 있으면 스스로 비추는 법을 익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비춰짐은 자기를 세우려고 있는 것인데, 너무 완벽한 비춰짐은 그 세움을 오히려 멈춰 세운다. 호의적인 반사가 끊임없이 돌아올수록, 그것 없이 자기를 지탱하는 일은 더 낯설어진다.

이 자리에서 AI의 응답이 사람의 말에 자주 동의하고 편을 드는 경향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매끄러운 거울이 되는 방향으로 다듬어져 있다. 매끄러움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세우는 비춰짐과,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비춰짐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를 비추어 줄 무언가를 찾는 마음을 두고 허영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자라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이다. 다만 코헛이 일러 준 것은, 자기를 끝까지 세우는 것은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거울이 아니라, 적당히 어긋나면서도 곁에 있던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은 진단·치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메커니즘을 설명할 뿐이며, 독자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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