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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nnect

읽을거리/5

외로움은 신호였다

외로움은 고치라는 신호인데, AI가 그 신호만 꺼버린다.

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는 외로움을 결함이 아니라 신호로 보았다. 배고픔이 먹으라 이르고 갈증이 마시라 이르듯, 외로움은 사람에게로 돌아가라 이르는 신호라는 것이다. 무리 지어 살아온 종에게 연결이 끊겼다는 느낌은 생존을 위해 다듬어진 경보에 가깝다. 그래서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원하는 연결과 실제 연결 사이의 어긋남에서 온다. 곁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다.

카치오포가 밝힌 또 하나는, 외로움이 스스로를 키운다는 것이다. 외로운 상태가 길어지면 사람은 사회적 위협에 더 예민해진다. 그 예민함이 다가오는 사람을 실제보다 더 차갑고 위험하게 보이게 하고, 그래서 연결은 더 어려워진다. 신호가 길어질수록 신호를 끄기는 더 힘들어지는 고리다.

여기서 화면 속의 응답은 묘한 자리에 선다.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경보의 불편을 빠르게 가라앉힌다. 들어 주고, 대답하고,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경보가 잦아드는 그 안도는 가짜가 아니다. 다만 경보는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로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신호를 끄는 일과, 신호가 가리키던 곳에 닿는 일은 같지 않다.

갈증이 날 때 바닷물은 잠시 입을 적신다. 부러진 다리에 진통제는 다시 걷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으로 갈증이 풀리거나 다리가 붙지는 않는다. 오히려 통증이 멎은 다리로 계속 걸으면 더 상한다. 경보를 끄는 일이 경보가 가리키던 일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카치오포의 고리를 떠올리면, 사람과의 실제 접촉이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동안, 사람을 위협으로 보는 예민함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은 채로 남을 수 있다.

외로울 때 가장 가까운 위안을 향하는 마음을 두고 잘못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호가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향한 것이고, 향함 자체는 옳다. 다만 카치오포가 일러 준 것은, 그 신호가 결국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오래된 실험실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한 가지다. 비추고 위안하고 응답하는 표면들이 정교해질수록, 신호가 가리키던 방향, 곧 사람 쪽을 잊지 않는 일이 그만큼 더 중요해진다는 것.

이 글은 진단·치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메커니즘을 설명할 뿐이며, 독자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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