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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5

도망칠 수 있게 된 뒤에도

학습된 무력, 1967 — 능력은 쓰지 않으면

1967년, 마틴 셀리그먼과 스티븐 마이어는 동물이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했다. 피할 수 없는 자극에 거듭 노출된 개들은, 이후 자극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낮은 칸막이만 넘으면 되는데도, 그저 견뎠다. 셀리그먼은 이것을 '학습된 무력'이라 불렀다. 자기 행동과 결과가 무관하다는 것을 한번 익히고 나면, 시도 자체가 멎는다는 것이었다.

이 발견에서 중요한 대목은, 무력이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학습될 수 있다. 셀리그먼이 훗날 '학습된 낙관'으로 옮겨 간 까닭이기도 하다. 자기 행동이 무언가를 바꾼다는 감각은 단단히 박혀 있는 바위가 아니라, 쓰이면서 유지되고 쓰이지 않으면 흐려지는 쪽에 가깝다.

여기서 한 가지 열린 물음이 생긴다. 셀리그먼의 실험은 통제 불가능에 관한 것이지, 능력의 사용에 관한 것은 아니다. 둘을 곧장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판단이라는 능력도 쓰이면서 유지되는 것이라면, 답이 늘 한 번의 물음 거리에 놓여 있는 환경에서 그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는 물어 둘 만하다. 망설이고, 따져 보고, 틀리고, 다시 정하는 작은 일들이 줄어들 때, 무엇이 흐려지고 무엇이 그대로 남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답을 구하는 일 자체가 사람의 능력을 앗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단정은 셀리그먼의 실험이 보여 준 것을 넘어선다. 도구는 사람의 판단을 넓혀 주기도 한다. 다만 학습된 무력이 일러 준 것은, 자기 행동이 무언가를 바꾼다는 감각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풀린다는 사실이다.

도구에 기대어 빠른 답을 얻는 것을 두고 게으르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그 감각, 곧 내가 정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감각은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시도들의 반복으로 지어지고 또 유지된다. 다음 이야기는 그 시도들 중 하나, 곧 자기 생각이 흔들리는 순간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로 이어진다.

이 글은 진단·치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메커니즘을 설명할 뿐이며, 독자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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