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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4

본인은 못 느낀다

변화의 기울기가 너무 완만할 때

변화의 기울기가 너무 완만할 때,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매일 아주 조금씩 공감의 감각이 둔해지는 일은 1년이 지나도 본인은 잘 모릅니다. 대개 주변이 먼저 알아챕니다. 그런데 주변의 피드백은 AI의 피드백보다 불편하고 덜 정교하므로, 종종 무시됩니다.

이 '본인은 못 느낀다'는 현상은 다음 단계로 설명됩니다.

1. 무비판적 타당화

AI가 사용자의 해석을 지속적으로 타당화합니다. 사용자는 자기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2. 비교의 비대칭

타인의 공감이 AI의 무조건적 수용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사용자는 이 차이를 '상대가 부족하다'로 귀속하지, '내 기준이 왜곡됐다'로 귀속하지 않습니다.

3. 재서사

관계가 실제로 소원해집니다. 사용자는 이것을 "원래 안 맞았다" 혹은 "저쪽이 변했다"로 다시 설명합니다. 이 다시 설명하는 과정을 **재서사(narrative reframing)**라고 부릅니다.

4. 닫힌 자기 검증

사용자가 자기 상태를 점검하려 할 때, 점검 도구가 AI가 됩니다. "나 괜찮은 거 맞지?"에 대한 AI의 답은 거의 확실히 "네, 잘 하고 있어요"입니다. 자기 검증의 순환이 닫힙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공감 위축(empathy atrophy)'이라 불리는 상태에 점진적으로 들어갑니다.1 하루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1년, 2년이 지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는 결의 두께가 조용히 얕아집니다.

관찰의 어려움

이 글의 주장 가운데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 마지막 단계입니다. 자기 상태를 점검하는 도구가 AI라면, 이 글의 내용을 AI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은 대개 부드럽고 긍정적일 것입니다. 그 반응 자체가 위 4단계 중 하나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효과가 있는 외부화 도구는 둘입니다. 자기보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의 눈, 그리고 시간 차이를 두고 자기 데이터를 읽는 기록. 사용 일지 또는 자가 점검은 그 시간 차이를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Footnotes

  1. Marlynn Wei MD, Psychology Today (2025); "The compassion illusion," Frontiers in Psychology (2025).

이 글은 진단·치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메커니즘을 설명할 뿐이며, 독자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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